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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사명으로 정의를 지킨 언론인

"고일 (高逸)"

고일

세상을 떠나서도 인천이라는 이름 위에 빛나는 숨겨진 인물들이 있다.
잘 드러나지 않는 희미한 역사 속에서 저마다의 삶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대에 경종을 울린 사람들.
<인천愛의회>에서는 그 시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천의 인물들을 찾아 떠난다.
이번 호는 기자로서 신념을 굽히지 않고 일제와 맞섰던 인천 대표 언론인 ‘고일’ 선생을 소개한다.

일제에 항거했던

참 언론인

인천석금 초판(출처 인천시립박물관) 인천석금 초판(출처 인천시립박물관)

인천 1세대 신문기자로 활동한 고일 선생은 언론인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삶의 궤적을 남겼다. 그는 수많은 인사들과 교류하며 항일운동, 청년운동, 문화·예술운동 등 많은 분야에서 인천의 지식층을 이끌던 인물로 거론된다.
서울 마포에서 태어난 고일 선생의 본명은 고희선이다. 생후 4개월 만에 이주해 어린 시절을 인천에서 보냈다. 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에는 3·1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뒤 곽상훈 등과 함께 ‘경인기차통학생친목회’를 조직했는데, 모임의 총무와 문예부장을 맡았다. 졸업 후에는 연천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했으나 일본인 교장의 황국신민화 강요에 항거하고 학생들을 도둑 취급한 교장의 뺨을 때리는 등의 사건으로 반년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게 된다.
인천으로 돌아온 그는 신문기자이자 항일운동가로 활동하게 되면서 고일이란 이름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일제 치하 인천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을 취재해 보도하던 고일선생은 일련의 사건들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게 쫓기다가, 1932년 북만주로 망명했다. 해방 이후 1954년부터는 ‘주간인천’ 주필로 재직하며 칼럼 <인천석금>을 연재했다.

그 시절 인천을

엿볼 수 있는 글

일제 감시대상 인물 카드(출처 국사편찬위원회)일제 감시대상 인물 카드(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인천 근현대 역사의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책이 있다. 바로 고일 선생이 주간인천 재직 당시 연재했던 <인천석금>이다.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뜻하는 <인천석금(仁川昔今)>은 개인이 쓴 최초의 인천 근현대사 책으로, 개항 초기부터 195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인천의 사회상이 담겨 있다. 고일 선생은 일년여간 ‘지면자(池面者, 못난 놈)’라는 필명으로 인천의 역사, 문화, 경제, 사회 발전상을 주간인천에 연재했다. 1955년에 연재된 글을 모아 책으로 발간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회자될 만큼 중요한 서적으로 평가된다. 당대 지식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천이 담겨 있기에 그 시절 인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설명되고 있다. 또한, 고일 선생은 인천석금뿐만 아니라 각종 지면을 통해 인천을 생생히 표현해왔다.

인천인물 사전

고일 사진

고일

  • 1903 서울 마포 출생, 인천으로 이주
  • 1915 인천공립보통학교 졸업
  • 1922 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 졸업
  • 1924 시대일보 인천지국 기자 입사
  • 1932 북만주로 망명
  • 1945 인천신문 논설위원, 대중일보 편집국장 등 역임
  • 1955 <인천석금> 발간
  • 1956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초대 상임위원 위촉
  • 1975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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