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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초등생 형제 화재 사고가 남긴 숙제들"

화재 현장 사진

단둘이 끼니를 해결하려다 불이 나 크게 다친 인천 초등학생 형제 사고는 전 국민의 안타까움을 샀다.
지난 21일 상태가 급격히 악화해 치료를 받다가 동생 A(8)군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에, 지역사회와 전국 곳곳에선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고 이후, ‘제2의 초등생 형제 참변’을 막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닌 소외된 아동이 없도록 사각지대까지 챙기는 실질적인 대책을 강조하고 있다.

A군 형제는 지난달 14일 오전 11시 16분께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원격 수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단둘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나 중화상을 입었다. 서울의 한 화상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A군은 지난 20일 저녁 부터 호흡이 좋지 않고, 구토 증세 등으로 상태가 나빠져 결국 21일 오후 숨졌다. 형인 B(10)군은 현재 원격 수업도 들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형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가 비대면 원격수업을 진행하는 중에 사고를 당했다. 국민들은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앞으로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제도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 인천 초등생 형제의 사고는 코로나19 때문이라고만 하기엔 기존 제도의 허점이 많았다. 아이들은 보건복지부가 사업을 총괄하는 드림스타트의 사례관리 대상 아동이었다. 이웃들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3차례에 걸쳐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신고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난 5월 형제가 어머니와 분리돼야 한다고 보고 법원에 분리·보호하기 위한 명령을 요청했다. 당시 미추홀구 드림스타트는 모자의 방문 상담도 원활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두 기관의 입장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화재 발생 한 달 전인 지난달 인천가정법원은 분리·보호 명령 청구를 기각했고, 형제는 단둘이 빌라에 남아있게 됐다.
형제의 사고는 수차례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참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사고 이후 인천시와 인천시교육청이 돌봄시설 이용 현황을 전수 조사하고, 돌봄 소외 위험이있는 아동을 대상으로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인천지방경찰청은 아동학대 긴급 조사를 진행했다. 인천시는 ‘학대·위기 아동 보호 및 지원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보건복지부 방침에 따라 조사해야 하는 지역 내 아동 3천200여 명뿐 아니라 미취학 아동, 장기 미등교 아동 등 총 1만 6천5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미 위기 아동으로 지정하고 관리하던 아동뿐 아니라 미처 파악하지 못한 학대·방치 아동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인천시의회도 아동 돌봄 정책 사각지대 개선과 제도 지원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아동 돌봄 정책 개선 촉구 결의안’을 원안 가결했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는 피해 아동을 발견하고 학대 피해 방지 방안 등을 제시하는 전담기관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도 지적됐다. 전체 아동 인구는 788만8천여명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국 67곳으로 전담 인력은 736명밖에 되질 않는다. 통합사례관리사 1인당 1만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학대 아동을 원활하게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인천지역 1~17세 아동은 45만8천여 명인데, 인천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은 3곳만 설치돼 있다. 1개 기관이 맡는 아동 수가 15만2천여명에 달한다. 경상남도가 1개 기관이 아동 18만1천여명을 담당해 가장 많고, 경기도는 1개 기관당 15만7천여명으로 두 번째로 많다. 인천은 세 번째로 많다.
이번 사고는 어머니와 아이들을 분리해야 한다는 아동보호전문기관 판단이 있었으나,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학대피해 아동을 친권자와 즉시 분리해 보호하는 등 위기 상황 때 친권을 제재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문 대통령은 “아동이 학대받거나 방치돼 이웃이 신고하더라도 부모의 뜻에 따라 가정에 다시 맡겼다가 비극적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며 “상황이 해소될 때까지 강제로 아동을 보호하는 조치를 포함해 제도적 보완 방안도 찾아달라”고 했다.
허종식(인천 동구·미추홀구갑) 국회의원은 아동이 학대받은 것이 의심되거나 재학대 위험이 있을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 보호자와 아동을 즉시 분리할 수 있도록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라면형제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최근 5년간 아동학대 건수는 2015년 1만1천여건, 2016년 1만8천여건, 2017년 2만2천여건, 2018년 2만4천여건, 2019년 3만여건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아동학대 유형별로 보면 2018년 기준으로 2만4천여건 중 정서학대가 4천728건(19.2%)으로 가장 많고, 신체학대 3천285건(13.4%), 방임 2천787건(11.3%) 순이었다. 학대 피해 아동은 원가정 보호를 지속하는 경우가 2만164건(82%)으로 가장 많았고, 분리 조치한 경우는 3천287건(13.4%)뿐이었다.
전문가들은 아동방임, 폭력 등 학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선 원활하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동보호기관 통합·일원화 등을 포함한 아동 관리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마다 아동보호 기관이 다양하게 설치돼 있으나, 제 역할을 못하는 건 고질적인 인력난과 시설마다 위기아동에 대한 통합 공유체계 자체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라며 “각 시설을 통합해 대표 중점기관을 지정하고, 전담인력 업무를 통합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부모의 아동 학대를 사회 총체적인 문제로 접근해 서비스를 구축해야 아동 학대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순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기관에선 교사, 의사 등 여러 사례 관리 신고 의무자를 대상으로 교육하고 대국민 학대 신고 홍보 사업을 추진하지만 아동 학대 중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방임은 ‘학대’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식 개선도 중요한 과제”라며 “인천 형제들 사고 이후, 위기 아동을 파악하기 위한 정책이 나오고 있는 만큼 이젠 ‘발견한 아이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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