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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를 살리고자 던진 몸

"강재구(姜在求)"

강재구(姜在求) 이미지

세상을 떠나서도 ‘인천’이라는 이름 아래 빛나는 인물들이 있다.
잘 드러나지 않는 희미한 역사 속에서 저마다 삶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대에 경종을 울린 사람들.
2022년 <인천애의회>에서는 그 시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천의 인물’을 찾아 떠난다.
네 번째 순서는 ‘희생의 아이콘’으로 대변되는 故 강재구 소령이다.
29세, 희생의 꽃으로 다시 피다

모든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위급한 순간,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 없던 상황에서 단호히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이가 있다.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폭발하는 수류탄을 몸으로 막고, 29세에 삶을 마감한 ‘강재구 소령’이다.
1965년 10월 4일, 베트남으로 파병을 앞둔 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가 강원 홍천 훈련장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고 있었다. 당시 제10중대장이던 강재구 소령은 부하들이 훈련에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도왔다. 차례로 수류탄을 던지던 중 한 이등병이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놓쳤고, 하필 대기 중이던 중대 병력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찰나의 순간 강재구 소령은 망설임 없이 수류탄으로 몸을 날렸다. 곧이어 폭음이 들렸고, 그는 산화했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났지만, 그가 있기에 무수한 대원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창영초, 인천중 거친 인천의 아들

인천 최초의 공립 보통 학교인 창영초등학교. 학교 안을 살펴보면 한 군인의 흉상을 발견할 수 있다. 강재구 소령은 1937년 인천에서 출생했으며 창영초등학교를 거쳐 인천중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서울고등학교를 나와 육군사관학교 생도가 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창영초등학교는 매년 강재구 소령에 대한 추모식을 고인의 흉상 앞에서 거행한다.
2019년에는 창영초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가 자매결연을 진행해 강재구 소령의 숭고한 희생을 학생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모교 서울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도 강재구 소령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가 숨을 거둔 강원도 홍천에는 강재구공원이 조성됐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그의 이타적인 삶과 희생에 대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또 그의 군인정신을 기리기 위해 군에서는 맹호부대 제1연대 3대대를 ‘재구대대’로 불렀다. 육군본부와 육군사관학교는 ‘재구상’을 제정하여 매년 육군의 중대장 가운데 모범 중대장을 선발하여 시상하고 있다.

인천인물 사전

강재구(姜在求) 사진

강재구(전 육군)

  • 1937 인천 출생
  • 1950 창영초등학교 졸업
  • 1953 인천중학교 졸업
  • 1960 육군사관학교 제16기 졸업
  • 1965 대한민국 육군 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 중대장
  • 1966 태극무공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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