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육아 일기
"최선화(崔善嬅)"아내이자 엄마였던
평범한 독립운동가일기 원본 사진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직책이 있지 않았다.
그들도 평범한 사람으로 그저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였고, 아내이자 어머니였다.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인 양우조·최선화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지식인이였던 최선화는 이화여전을 졸업해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우연히 독립운동을 하던 양우조를 만나면서 1936년 그녀는 그를 따라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흥사단에 가입해 활동하던 중 1937년 백범 김구 선생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광저우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으나 그해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류저우에 있던 임시정부와 합류했다.
1938년 첫째 딸 제시를 낳은 그녀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가족을 보살피면서 독립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1940년 새로 창립된 한국독립당에 가입했으며, 임시정부 요원들의 부인을 단합시켜 한국혁명여성동맹 결성에 기여했다. 한국혁명여성동맹은 여성들의 항일운동 역량을 강화하고,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1941년 조직된 단체이다. 1943년에는 3·1만세운동 직후에 조직된 애국부인회의 재건에 동참해 서무부장을 맡기도 했다.
딸의 성장과
독립의 염원이 담긴 기록제시의 일기 책
최선화는 딸인 제시를 키우면서 육아 일기를 작성했다. 남편과 번갈아가면 쓴 것으로 아이가 태어난 1938년부터 1946년 환국할 때까지 8년간의 기록이다.
독립운동 중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신중한 일이었다. 공습의 위험 속에서도 제시는 무사히 자랐다.
딸의 성장과 가족사를 중심으로 다룬 육아일기지만 당시 임시정부 가족들의 생활상과 녹록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의 삶이 녹아 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 공군기의 공습을 받으며 광저우, 류저우, 치장을 거쳐 충칭으로 이동한 과정과 그 실상을 알려준다. 그 당시 임시정부에 관한 기록들이 대부분 소실됐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귀중한 사료이다. 일기의 원본을 모아 외손녀 김현주 씨가 1999년 동명의 책으로 출판했다.
그녀는 자신이 소장해온 독립신문과 남편 양우조의 저작물 등 수록한 독립운동사료집 42건을 국가보훈처에 전달했다. 정부에서는 그녀의 공적을 인정하여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