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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캠프마켓 조기반환"

부평캠프마켓을 보존해야한다고 강조하는 조성혜 의원

우리 땅인데, 우린 못 가는 곳, 드디어 부평미군기지가 시민의 품으로…

조성혜 의원 | 비례대표

우린 그곳을 금단의 땅이라 불렀고, 하늘 높은 담장과 가시덩굴로 꽁꽁 막혀 있는 곳을 상상했다. “우리 땅인데, 우린 못 가는 곳. 언제쯤이면 뛰어다닐 수 있을까.” 드디어 부평미군기지가 시민 품으로 성큼 안겼다. 일제강점기 민족수탈의 근거지였던 곳 강제징용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긴 곳. 해방 후에도 분단의 현실처럼 발조차 디딜 수 없던 곳이 반환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한 세기 우리 품을 떠났었기에, 더더욱 300만 인천시민을 위한 진정한 쉼터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인천 지킴이로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벌인 조성혜 의원은 누구보다 부평미군기지 조기반환을 애태우고 있다. 그리고 부평미군기지에 평화의 두 날개를 단 생명이 자리하길 간절히 염원한다.

부평캠프마켓 역사성 보존해야

부평캠프마켓 입구부평캠프마켓 입구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이 81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1년 전인 지난 2019년 12월 11일 우리 정부와 주한 미군은 부평 캠프마켓 공식 반환에 최종 합의했고, 지난 10월 14일 전제 부지 44여㎡ 중 야구장과 농구장 등으로 사용된 B구역이 일반시민에게 공개됐다.
이 땅은 일제강점기 대륙 침략전쟁을 위한 무기를 제조하는 일본육군조병창으로 쓰이다 해방 후 주한 미군 군수지원사령부인 애스컴(ASCOM) 시티로 탈바꿈됐다. 2002년 반환 결정 후에도 무려 17년이란 반환 합의 기간이 필요했고, 1년여의 정지작업을 거쳐 반환부지 일부가 시민에게 공개된 것이다.
부평미군기지 캠프마켓은 진정한 시민 품으로 안기기 위한 사실상의 첫걸음을 뗐다. 아직 부대 곳곳은 막혀 있고, 활용방안도 시민 합의가 최종적으로 이뤄지진 못했다. 그렇지만 이 땅에 더는 전쟁의 상처를 안길 수 없기에 과거를 교훈삼아 현재를 살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돼야 할 것이다.

부평공원, 평화 공원으로

평화의 소녀상,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 나와 있는 조성혜 의원평화의 소녀상,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 나와 있는 조성혜 의원

부평공원도 마찬가지다. 옛 미쓰비시 등에서 강제징용된 자들의 한이 서린 ‘강제징용노동자상’이 바로 이 곳에 서 있다. 2002년 공원으로 개방되기까지 이곳은 1997년 말까지 군이 사용했고, 그 앞에는 미쓰비지 공장과 줄사택이 빼곡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순간입니까”
조 의원에게 부평미군기지 개방은 누구보다 벅찼다. 그동안 단절된 공간에서 고통받던 부평구민의 상처를 알기에, 조 의원은 “반드시 상처를 아물게 하고, 시민을 위한 새살이 돋아나게 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품고 의정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평공원에는 지난 2017년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의 피해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을 기리는 징용 노동자상이 들어섰다.
조 의원은 쉴 수 있는 공간과 야외무대가 어우러진 공간이자 각종 체육시설과 놀이시설이 안기는 것은 물론 부평미군기지라는 ‘전쟁’의 상징성을 ‘평화’의 공간으로 치유될 수 있도록 평화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 의원의 발걸음은 오늘도 부평미군기지와 부평 공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의정활동 매 순간 평화라는 두 날개를 단 나비가 날고 비둘기가 마음 편히 노닐 수 있는 곳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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