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시의회 ‘풀뿌리 민주주의’ 내면화로 100년 미래 연다"

지방자치 부활로 인천시의회가 개원된지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확고한 마음으로 사회 기반을 다져나가는 이립(而立)의 나이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성숙하지 않는 것처럼 지방자치제 정착을 위해선 시의회의 주체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사진

송도국제도시 전경송도국제도시 전경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30년간 멈춰 섰다가 1991년 지방의원,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을 시민의 손으로 직접 뽑음으로써 민선 자치시대가 열렸습니다. 95년은 인천시가 직할시에서 옹진군, 강화군, 김포군 검단 지역을 편입해 광역시로 도시 확장을 한 해이기도 합니다. 중앙부처에서 거세게 반대하던 송도 신도시가 김영삼 대통령 참석 하에 착공했고 인천대 시립화, 북구청 세도사건,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등으로 인천시가 주목받던 시기였습니다.
필자는 32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지방자치 서막을 열었던 91년에서 95년까지의 일들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자 초년병 시절이라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과 거대한 사회변화가 신기했었나 봅니다. 더욱이 공직자 출신인 필자의 부친이 91년 경기도의원에 출마해 낙선한 집안 사정을 경험한 터라 당시의 지방의원 공천 뒷거래, 선거운동원 백태, 흑막의 선거자금 행태 등을 깊숙이 알고 있습니다. 1980년대 말 1기 신도시에서 500만 호 건설로 재미를 본 건설업자들이 대거 지방의회로 진출하면서 91년 지방선거는 그야말로 복마전이었습니다. 이제 그런 금권선거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있었던 정치풍토였습니다.
인천시의회는 지방자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직할 1대(1991)’를 열었고, 광역시대인 ‘민선 1기(1995)’, IMF(외환위기) 와중에 들어선 ‘민선 2기(1998)’를 보냈습니다.
이어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고 송도·영종·청라가 전국 처음으로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민선 3기(2002)’, 이를 기반으로 개발성장시대를 맞은 ‘민선 4기(2006)’를 거쳤습니다.
소통과 참여의 거버넌스(Governance)가 자리 잡은 ‘민선 5기(2010)’, 녹색성장과 기후변화 어젠다(Agenda)가 휘몰아친 ‘민선 6기(2014)’, 저성장과 코로나 팬데믹에 따라 급격하게 비대면 사회로 진입한 ‘민선 7기(2018)’까지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겪었습니다.

배다리 일대 전경배다리 일대 전경

30대 청년으로 성장한 인천시의회는 그동안 수많은 성장통을 겪으며 적지 않은 성과를 냈습니다. 한때 집행부의 선심 행정과 개발지상주의로 전국 최악의 재정위기에 처했고, 신·구도심 불균형개발, 사회 양극화 현상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일부 시의원들의 자질 부족이나 비리 연루 의혹으로 질타를 받는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반면 시의원들이 지역 특성을 살린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고, 다양한 계층을 향한 주민 밀착형 경제와 복지 제공으로 행정서비스를 향상시켜 왔습니다.
이제 주민 참여가 확대되면서 지방행정에 투명성이 확보됐고, 방만한 지방행정 재정운영에도 제동이 걸리는 등 순기능적인 역할이 증대됐습니다.
국내 상황이 중앙집권체제와 지방분권의 혼합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 비춰보면 인천시의회는 괄목할 성장을 해왔습니다. 지방자치가 시민사회의 열망에 부합하기 위해선 아직도 손 볼 곳이 많습니다. 제도적 분권 완성이 시급하고 이에 수반한 재정 분권을 확실히 이뤄내야 합니다.

지방자치법 개정 촉구 결의대회지방자치법 개정 촉구 결의대회

30년 전 무보수명예직의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부활이념에서 벗어나 시대에 맞는 인식 전환도 필요합니다.

30년 전 무보수명예직의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부활 이념에서 벗어나 시대에 맞는 인식 전환도 필요합니다. 특히 지방자치를 규정한 헌법 제8장과 지방자치의 사무특례를 규정한 지방자치법 제9조에 대한 지적은 여전합니다.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거나 지방자치단체의 사무규정에 ‘다른 법령에 이와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는 그러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지방분권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어떤 법령이든 헌법을 앞설 수 없습니다. 올해 1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공포돼 3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자치분권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합니다. 그렇지만 중앙집권적 사고가 여전한 법체계에서의 자치분권은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재정분권’없는 지방자치는 허상입니다. 우리나라의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69%대 21%입니다. 국세인 부가가치세 중 지방에 배분되는 비율이 21%에 불과합니다. 일본은 55대 45, 독일은 50대 50, 미국은 56대 44인 것처럼 지방자치 선진국들은 재정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안정적인 자치분권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국가 사무가 지방분권에 따라 지방으로 이관되면 재정도 이관되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실례로 하천복원사업의 경우 국가 사무로 있을 때 국가에서 전체사업예산의 50%를 부담하고, 광역 및 자치구에서 50%를 분담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지방 사무로 이관하면서 인천시와 해당 자치구가 관련 사업비 확보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1대 의회 개원 현판식1대 의회 개원 현판식

문재인 정부는 ‘재정 분권’을 핵심국정과제로 설정하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3으로 맞추겠다고 수차례 공약했고 장기 목표로 6:4까지 만들겠다고 제시했습니다. 최근 여당 재정분권특별위원회에서 이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돼 그나마 다행입니다.
현재 특위와 정부 부처가 조율중인 안에 따르면 재정 분권이 최대치로 개선돼도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이 72대 28을 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방소비세율이 7% 인상되면 지방자치단체에 신규로 6조 원, 10% 인상하면 8조5천억 원이 지방자치단체에 배분된다고 합니다. 제도적으로 지방자치가 중앙집권에 예속된 상황에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서 독자적으로 자치분권을 추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천시의회 스스로 재정 분권 확보를 위한 공론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인천시의원을 비롯한 지방의원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여야 후보들이 각기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을 공약을 내세우면서 ‘지방의회=풀뿌리 민주주의’ 공식이 34년간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지방의원에게 ‘무보수명예직’이란 꼬리표가 붙게 됐고, 지방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봉사 아닌 봉사를 강요하면서도 권리보다는 책임만 물어왔습니다.

인천광역시의회 전경인천광역시의회 전경

그나마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으로 시의원 2명당 1명씩 개인 보좌관격인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둘 수 있도록 했으나 국회의원이 입법보조원을 비롯해 최대 10여 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생색내기에 불과합니다. 일할 여건은 만들어준 뒤 제 역할을 못할 때 책망하는 게 마땅합니다. 해방과 함께 1949년 지방의회가 닻을 내린 이후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해산되고, 이후 1987년 6·10 민주화운동으로 부활 되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성쇠(盛衰)를 겪었던 흑역사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방의회는 경쟁의 시대에서 상생의 시대로, 독점의 시대에서 나눔의 시대로, 거대담론보다는 생활정치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목록


상단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