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일보 2007.7.25)
- 강석봉/인천시의회 산업위원장
한때, 서울 충무로의 어느 작은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비록 하는 일은 교정을 보는 일이었으나, 덕분에 세계사를 공부하는 좋은 기회를 가진 바 있다.
70년대 말경, 서점가에 부상하던 분야 중의 하나가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이었고, 그 주요 대상이 아프리카와 중동국가들로서, 그들의 경제적 역할과 의미가 주요 내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국가의 베일에 싸인 정치발전 형태도 세상에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특히 공부를 하던 중에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그들 대부분의 나라가 정권(왕권)을 유지하며 30년을 넘기기가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30년이라 함은, 한 세대에 불과한 기간으로서, 거의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이 암살과 모반에 의해 매번 왕이 바뀌는 후진국형 정치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치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안정적이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국가운영을 해 왔으며, 그로 인해 받았을 국민들의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이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지켜보면서, 역사라고 하는 물줄기를 통해 이해를 하려고 애를 써 보기도 하지만, 애꿎은 백성들과 고통 받고 있을 우리 선교단 일행의 안부가 그저 걱정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먼지가 켜켜이 앉은 삼국지를 다시 꺼내 읽으면서 유비나 조조, 관우, 장비의 스토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애꿎게 성벽을 오르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 저 수많은 병졸들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문득 가져본다.
대조영이 발해를 세우는 기가 막힌 영웅적 일대기를 보면서도, 토요일마다 TV화면에서 수도 없이 죽어 나가는 저 얼굴 없는 아기 아버지들은, 저 이름 없는 한 아낙의 지아비들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조명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적을 향해, 그저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수긍하기 싫은 논리에 나를 몽땅 걸어야 하는 인간의 지배구조가 도무지 이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베트남의 정글에서 죄 없이 죽어가는 저 병사들의 증오가, 또한 죄 없이 죽어가는 적군의 병사를 향하고 있음이 과연 옳은 전제이겠는가?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한 합동연설회가 제주도에서 열리고, 그 자리에서 보기 민망한 몸싸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여파로 모든 합동연설회를 중지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하니 참으로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 영향을 줄까봐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라, 무슨 죽고 살 일이라도 만난 것처럼 상대 대의원을 향한 증오의 패 갈림이 안타까운 것이다. 단상에 올라 웃음을 머금고 손을 흔드는 후보들이야 그 가슴에 어떤 칼을 갈고 있든 이해를 할 수 있겠지만, 맥없이 죽어(?)나가야 하는 저 이름 없는 대의원들의 아우성은 현대 정치사에서 과연 어떤 가치를 갖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정치를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역사나 국가라고 하는 거창한 주제를 놓고 크게 고민해 본적도 없지마는 필자의 직업도 선출직이고 보니 때로는 후보로서, 때로는 대의원으로서 늘상 겪어야 하는 경선이기에 갑갑한 마음을 몇 자 적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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