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 신포시장 건너편, 도무지 성당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좁고 가파른 언덕위에 답동성당이 서 있다. 원래 이름은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 답동 성 바오로 성당’. 줄여서 답동성당이라 부른다. 답동성당은 1890년 빌렘 신부가 지금의 성당 자리를 매입한 뒤 1893년 건립을 시작해 1897년 완공되었다. 높은 건물과 뾰족한 첨탑이 특징인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성당을 정면에서 보면 가운데 높이 솟은 종탑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작은 종탑 두 개가 자리 잡고 있다.
종탑 윗부분은 둥근 돔을 얹어 성당의 외관에 아름다움과 품위를 더했다. 문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사적 287호로 지정됐다. 인천의 성당 가운데 주교좌(주교가 교회 예식 때 앉는 의자)가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색채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시선이 머문다. 전당 쪽 장미 문양 열다섯 점, 좌우 벽면엔 성경 내용을 주제로 한 열여섯 점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1979년 본당 설정 90주년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신포동에서 자란 안병배 의원에게 답동성당은 의미가 남다르다. “성당과 가까운 신흥초등학교에 다녔어요. 또 제가 천주교 신자예요. 어려서부터 자주 오가던 곳을 지금은 어린 손자와 함께 다니니 성당의 의미가 더 각별하죠.”
성당의 활동은 설립 초기부터 주민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성당에서 운영한 해성보육원은 아동복지의 효시가 되었고 박문여고를 개교해 여성에게 근대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1980년대엔 시민들의 뜨거운 민주화 열망도 기꺼이 품었다. 5·3 민주항쟁, 6월 민주항쟁, 7·8월 노동자 대투쟁에 이르기까지 성당에서 시민들과 단체의 집회가 열려 지금까지 인천지역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불리고 있다. 성당 한쪽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6월 민주항쟁 30주년 인천조직위원회’에서 세운 기념 표석이 있다.
“성당은 인근에 있는 가톨릭회관과 함께 인천 민주화운동의 산실이죠. 그런데 얼마 전 가톨릭회관이 철거되어 안타까워요. 내년 초부터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는데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지켜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