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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부친께서 작고하셔서 주말에 상가에 갔었다. 여느 상가와 마찬가지로 상주인 친구를 비롯해 3명이 상복을 입고 문상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고인의 영정 앞에서 가볍게 목례로 예를 갖춘 후 향을 하나 집어 피우는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 곡소리였다. 내가 어릴 적에 고향 마을에서나 듣던 상갓집의 곡소리. 나이가 들어 까맣게 잊고 있었고, 결혼 후 이곳저곳 수많은 상가를 다녀보았지만 어느 샌가 사라져서 도통 듣지 못했던 상갓집 상주의 곡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생경했다. 그리고 가슴 한편으로는 뭉클함마저 들었다. 부모를 여읜 자식이 문상객 앞에서 곡을 안 하는 것에 대해 요즘 세대엔 그걸 일컬어 불효라고 할 수는 없으나, 곡소리를 내어 멀리 떠나는 부모를 위해 울어주는 상주는 진정 효자였다.
곡소리는 상주와 맞절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상갓집에서 곡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요즘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내 나이 또래쯤의 중년층 이상이 어릴 적에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상가에서는 항상 곡소리가 들렸다. 상주들이 문상객이 올 때마다 “어이구, 어이구” 하면서 곡소리를 내었고, 그것이 부모님을 멀리 떠나보내는 죄인인 자식의 마지막 효도였다.
그리고 그때는 고인의 직계 가족 당사자만 곡을 한 게 아니었다. 이웃의 누구라도 그 지인들은 상가에 오면 상주와 함께 “애고, 애고” 하면서 같이 울었고, 만약 마을에 혼자 사는 노인이 돌아가셨을 때는 상주가 없어도 망인과의 옛정을 못잊어 찾아 온 외인들의 곡소리가 더 구슬프고 길며 소리도 컸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곡을 대신 해 주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과도기까지 생겼다. 그러나 그런 과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제3자가 곡소리를 내주는 것에 대한 반감과 비판이 쏟아져 그마저 결국 없어지면서 상가에서 곡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어 망연자실한 흐느낌 소리 빼고는…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완전히 사라진 걸로 알았는데 이번에 “어이고, 어이고”하며 문상객을 맞는 모습을 보니 떠나가신 친구의 아버님은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부모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보답을 다 하지 못한 채 부모님 중 한분을 떠나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효도에 게으르던 지난날을 늦게라도 용서 빌고자 영전 앞에 무릎을 꿇고 곡소리를 내어 보심은 어떨는지…
곡소리를 내는 상가를 다녀오면서 우리시대의 ‘효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김석원 (서구 봉오재1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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