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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일수록 차가운 새벽일수록 더 뜨겁고 환하게 빛난다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

한겨울 새벽 공기는 차갑고 고요하다. 어둠을 가르며 들어선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은 별천지에 온 듯 환하고 분주하다. 25년 간 쉼 없이 이어져 온 새벽의 소란함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은 2019년 9월 남촌동으로 이전을 앞두고 있다. 상인들은 구월동에서의 마지막 겨울을 보내는 중이다. 진하고 생생한 노동의 현장이다.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 상인사진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 상인사진

 

새벽 두 시, 시작되는 경매

새벽 두 시, 시작되는 경매

새벽 두 시 채소 경매를 시작한다. 시장 바닥에 쌓인 물건들은 하나같이 싱싱하고 향긋하다. 이제부턴 경매사의 역할에 무게가 실린다. 경매사는 농산물의 상품성을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해 최초 입찰가를 결정해야 한다. 오랜 경험과 관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탐스러운 농작물을 입찰할 땐 경매사는 신이 나고 중도매인은 긴장한다. 경매사와 중도매인 사이에 치열한 눈빛이 오간다. 경매가 끝나면 중도매인들은 거래처로 배달을 가거나 오후 다섯 시 폐장까지 시장을 지키며 도소매인을 맞이한다. 저녁이 되어도 이곳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폐장 후부터 각 산지에서 농산물을 실은 차량이 속속 도착하기 때문이다. 시장을 지켜온 이들의 하루는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채 내일로 이어진다. 1997년부터 22년째 이곳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박연우(65) 씨는 매일 밤 12시 5분에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새벽 1시면 시장에 나와 경매에 나올 물건을 미리 살핀다. “2시부터 경매가 있으니까 그 안에 물건들을 봐요. 물건이 좋은지 나쁜지. 20년을 넘게 했어도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어요. 노동의 대가가 있으니 하는 거죠.” 박씨가 취급하는 품목은 무려 60여 가지나 된다. 배추와 상추, 치커리 등 엽채류와 가지, 애호박 같은 열매채소, 대파, 버섯, 샐러리 등 철마다 다양한 채소를 도소매로 판매한다. 박씨는 수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장 이전에 기대가 크다. “이곳에 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사 가는 건 찬성이에요. 여기는 환풍 시설이 없어서 먼지가 많고 주차장이 너무 부족해요. 시설이 나은 곳으로 가면 좋은 물건이 많이 들어올 수 있고, 그러면 우리가 시민들에게 좋은 채소를 공급할 수 있잖아요. 시에서 잘 해줬으면 좋겠고 홍보가 많이 됐으면 좋겠어요.”

다시 시작해야 하는 두려움은 크지만

다시 시작해야 하는 두려움은 크지만

김호연(42) 씨는 남편과 함께 14년 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상인들 중 여전히 ‘막내’다. “이 일을 20년 이상 해 오신 분들이 많고, 자식이 부모 뒤를 이어 장사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전에 숭의동과 부평에 있던 깡시장, 현대시장에서 채소 파시던 분들이 여기 생길 때 이쪽으로 많이 오셨다더라고요. 저희는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시장이 생긴 이후에 들어와서 거래처 만들고 노하우 익히느라 힘들었죠. 자리 잡는 데 3년 걸렸어요.” 김씨 역시 시장 이전에는 찬성이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사 가면 또 다시 자리를 잡아야 하니까 두렵기도 하죠. 그곳에 시장이 생겼다는 걸 알아야 사람들이 올 테니까요. 경기가 좋지 않아 더 걱정이에요. 시설이 좋아지는 건 좋아요. 여긴 시설이 많이 낡아서 비 오면 천장에서 비가 새기도 해요. 주차장이 부족해서 차 가지고 물건 사러 오시는 분들이 불편함을 많이 호소하시고요. 새로운 시장으로 가면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죠.”

현 부지,좁고 주차시설 턱없이 부족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 내부사진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은 1994년 1월 채소경매장으로 개장한 뒤 2000년 과일경매장이 문을 열었다. 하루 평균 500톤가량의 채소와 과일이 산지에서 쏟아져 들어온다. 현재 채소를 펼쳐놓고 장사하는 장소는 원래 경매를 하는 곳이다. 경매장과 장사하는 곳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아 폐장 이후엔 가게 마다 물건을 한쪽으로 옮겨 경매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폐장시간을 오후 5시로 정해놓은 이유이다. 도매시장의 이전 문제는 10여 년 전부터 거론되었다. 건물이 협소하고 낡아 이전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또 1994년 시장 건립 당시엔 변두리였던 곳이 백화점과 인천터미널역이 생기면서 교통량과 이동인구가 늘어 차량 통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심각한 건 좁은 부지와 주차문제였다. 시장 관리사무소 전병호 주무관은 전국 특?광역시 중에 이렇게 좁은 부지에 도매시장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한데 확장할 부지가 없지요. 주차비를 안 받다보니 이곳에 장시간 주차해놓는 얌체족들도 많아요. 현재로썬 단속할 방법도 없고요. 이전 예정지인 남촌동 177-1 일대는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고 새로 건립되는 시장은 주차면수가 네 배 정도 늘어나는 데다 주차비도 따로 받을 가능성이 커 주차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인천 전역에 품질 좋은 농산물 공급 기대

전 주무관은 새 장소로 이전 시 공급 물량이 늘어나고 매출도 오를 거라 전망한다. “지금은 비좁아서 지게차나 큰 트럭이 빨리빨리 움직일 수가 없어요. 농산물을 원활하게 하역해야 하는데, 먼저 들어온 차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형편이에요. 그 분들은 시간에 쫓기는 분들이거든요. 대기시간이 길고 장소가 좁아 불편한데 굳이 여기 올 필요가 없게 되잖아요. 출하자나 기사들이 이곳을 선호하지 않죠. 소비자 입장에선 좋은 상품을 놓치기 쉽고요.” 새로 지어질 시장 건물에는 경매장과 점포가 완전히 분리된다. 산지에서 물건이 들어오는 초저녁에도 경매가 가능해진다.

“도매시장 통해서 채소와 과일이 인천 전역에 팔려나가잖아요. 전통시장이나 동네 마트, 식당, 학교 급식으로 공급이 되는 거죠. 단순히 좋은 시설로 가는 걸 떠나서 인천 전역에 신선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도매시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면 시장이나 마트 등 지역 상권도 살아나리라 생각합니다.” 겨울은 상인들에게 혹독한 계절이다. 추위에 손과 발이 시린 것도 문제지만 영하의 혹한에 자칫 채소들이 얼어버리기 일쑤. 이불과 비닐을 단단히 덮어 빈틈을 여미는 손길에서 여린 먹거리를 다루는 순한 마음이 느껴진다. 내년 겨울엔 새로운 장소에서 따뜻한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 트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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