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부터 제8대까지
"30년 걸어온 길, 사진으로 만나다"1991년 30년 만에 부활한 제1대 인천직할시의회는 의원 모두가 의정활동의 체계를 처음부터 하나씩 쌓아갔다.
1995년 1월 1일 인천직할시의회에서 인천광역시의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경기도 강화군과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이 인천으로 편입됨에 따라 경기도의회 의원 5명이 인천광역시의회로 흡수되면서 기존 27명에서 32명으로 의원수가 확대됐다.
같은 해 산업건설위원회가 산업위원회, 건설위원회로 분리되면서 현재 상임위원회 토대를 마련했으며, 인천국제공항의 성공적 건설 등 인천 현안 해결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1995년은 1991년 지방의회를 넘어 광역·기초자치단체로까지 지방자치가 확대된 해다.
임기 시작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의 성공적 건설에 매진했고, 굴업도 방사성 폐기물 부지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여성의원이 탄생하며 인천의 여권신장과 소수약자를 대변하는 시의회로 자리잡았다.
특히 수도권매립지 개발에 따른 인천시민의 피해를 대변하는데 앞장섰다.
1998년, IMF 구제금융으로 혼란스러운 시기 3대 인천시의회가 개원했다.
3대 의회는 인천 내·외적 성장에 노력했다. 개원 직전 실시된 인천시민 여론조사를 토대로 인천시민이 원하는 여론을 적극 수렴해 인천의 도시 이미지를 회색도시에서 녹색도시로 변화시키기 위한 각종 정책 마련에 나섰다.
또 혼란스러운 당시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우자동차 사태 해결과 인천항 경쟁력 강화에 앞장섰다.
2002년 개원한 4대 의회는 의정활동 정립에 앞정서며 시 집행부에 맞춰졌던 의회회의규칙을 고쳐 시정질문 답변 방식을 바꾸고, 시정질문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체계화된 시스템을 도입했다.
특히 인천경제자유구역인 송도·청라·영종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제도를 도입했다.
또 남북관계에서 회복의 주도적 역할을 자처하며 다양한 대북사업에 앞장섰다.
전국 광역의회 최초로 박승숙 의장이 직접 북한 평양을 찾았다.
❻ 서울지하철7호선 인천지역 연장건설공사 기공식(2005.9.13.)
5대 의회는 의회의 고유 권한이자 시민을 위한 제도인 조례 제·개정에 노력했다.
그동안 두 자리수에 머문 조례 제·개정 건수는 5대 때 193건에 이르렀고, 이는 후 대 시의회의 모범이 됐다.
또 그동안 ‘무보수 명예직’에 머물던 지방의회는 2006년 지방자치법 개정에 따라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의 근거가 마련됐다.
5대 의회는 인천을 넘어 아시아 곳곳을 돌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유치를 위한 외교 활동에 매진했다.
전국 지방의회 최초로 인사간담회를 도입한 6대 의회는 지방자치의 모범으로 기록됐다.
인사간담회를 통해 시 집행부의 고유권한이던 인사권을 시민 눈높이에 맞게 검증했고, 입법활성화를 위해 의원 연구단체 및 의정모니터 1기를 출범했다.
6대 의회는 인천지하철 2호선 사업을 구체화했고, 시교육청 소관이던 교육위원회를 시의회로 이전했다.
전국 최초 만 4세 영유아 무상 보육 실현과 초등학생 전면 무상급식 단초를 마련한 시기도 6대 의회다.
인천의 고질적인 재정위기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제도 정비와 조직 재구성, 불유불급한 예산 심의의결 등에 나섰다. 또 타지역에 비해 열악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바로잡고, 불합리한 정부 정책을 고치기 위해 국회와 정부부처를 찾아 인천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에 맞춰 위축된 지역 경제 활성화에 다양한 정책 개발과 각종 조례안을 다듬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임기 반환을 돈 8대 의회는 전염병 확산 방지와 방역을 통해 인천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총력을 다하고 있다. 다양한 정책을 의회 차원에서 개발해 시 집행부에 전달했고, 인천e음 정책 다각화에도 나섰다. 여기에 민생경제 활성화를 위해 스스로 의원 업무추진비와 의회 국제교류 예산 등을 자체 반납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화훼농가를 돕기 위해 꽃 선물하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❺ 코로나19 긴급재난 지원금 처리를 위한 제261회 원포인트 임시회 개최(2020.3.31.)
❶ 문화복지위원회, 아이사랑꿈터 남동구 1호점 점검(2020.10.8.)
휘장은 인천광역시의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각상징물로써 일편단심을 의미하는 나라꽃 무궁화를 형상화했다. ‘의회’를 표기해 시민을 위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의정활동을 펼치고자 하는 의원의 각오를 담아냈다.
한자로 된 상징물인 ‘議’는 지난 2015년 5월 13일 개정한 한글화 관련 규정에 따라 지금의 ‘의회’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