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천광역시의회Incheon Metropolitan Council

메뉴메뉴

상단 검색 열림

의원칼럼

  1. 인천시의회 홈
  2. 의원소개
  3. 의원칼럼

SNS공유

인쇄

미국은 모든 전리품을 회수하라

  • 작성자
    중부일보
    작성일
    2007년 10월 29일(월)
  • 조회수
    576
                미국은 모든 전리품을 회수하라


 1871년 신미양요(미국 군함이 강화도 앞바다에 침입한 사건) 때 미국이 전리품으로 빼앗아간 '어재연 장군기'가 13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22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어재연 장군기'를 공개한 행사에 참석해 장군기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고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밀려왔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350명의 부하들과 함께 처절한 싸움의 상대였던 미국에서 136년 동안 돌아오지 못하고 울분을 삭혀야 했던 장군의 호통이 나를 향해 꾸짖는 것 같아 강화도에 살고 있는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죄스러움이 앞섰다.

 깃발 한가운데 장수를 뜻하는 '帥(수)'자가 적혀 있어 '수자기'로 불리는 '어재연 장군기'는 신미양요 때 강화도에서 조선군을 지휘하다 미군의 공격으로 전사한 어재연(1823∼1871) 장군이 사용한 군기다. 미군은 전투에서 승리한 뒤 강화도에 게양돼 있던 장군기를 내리고 그 자리에 성조기를 꽂았다.

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간 장군기는 미국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돼 왔다.
 
장군기의 크기는 가로 415㎝, 세로 435㎝로 재질은 삼베다. 장군기 오른쪽엔 미군이 승전을 기념해 군기 일부를 잘라낸 흔적이 있다.

 신미양요 당시 48시간 동안 계속된 전투에서 병력과 무기가 절대 열세였던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조선군 350명은 끝까지 항전하다 장렬히 전사한 강화 광성보 손돌목 돈대에는 그날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채, 염화강을 바라보고 있다. 비록 패전은 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맨손으로 최후를 맞은 조선군에 대해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한 미군 지휘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전쟁사에 찾아볼 수 없는 치열한 전투였으며 적군이지만 조선군은 최후까지 몸을 아끼지 않고 조국을 지킨 영웅들이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장군깃발은 하나의 장군을 상징하는 깃발이기 전에 우리조상들의 피와 숨결, 조국애가 녹아있는 역사적 상징으로 반드시 영구히 반환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범국민적인 관심과 정부의 반환 노력이 계속되길 촉구하며 장군깃발이 돌아오기까지 애쓴 문화재청과 인천시의회, 강화군민, 성원해 주신 국민들께 감사를 드린다. 특히 깃발이 돌아오기까지 관심을 보여 준 언론에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하며, 무엇보다 12년 전부터 장군기 반환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장기 대여 방식을 제안한 미국인 토머스 듀버네이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인천시의회 결의안 채택 발의와 범국민추진위원회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서 장군기가 영구반환이 아닌 임대 방식으로 고국에 돌아온 것은 아쉽지만 당시 죽음으로써 이 땅을 지킨 장군과 병사들의 한을 미약하나마 풀어드리고 위로할 수 있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이러한 역사적 아픔이 있었기에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136년 만에 돌아온 장군과 350여 명의 조선군들도 발전된 조국을 보고 기뻐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미 해군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50여 개의 군기와 대포 48문 등 전리품 모두를 미국은 반환해야 한다. 신미양요 당시 미국은 공식적인 선전포고도 없이 침략한 것으로 미국이 전리품으로 보관하는 것은 우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에 미국은 조속히 장군깃발의 영구반환과 전리품 모두를 한국으로 반환해 주길 강력 촉구하며 전리품 모두를 반환해 한·미 우호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길 바란다.


 유천호/인천시의회 의원

목록

자료관리 담당자

  • 담당부서 : 총무담당관
  • 담당팀 : 보도담당
  • 전화 : 032)440-6296

만족도 평가

결과보기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