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가슴에 영웅은 있는가?
우리들 가슴에 영웅은 있는가? | ||||||||||||
오흥철(인천시의회 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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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출신 인물 중에 누가 있습니까?” 이를 열거하자면 제2공화국 과도정부 총리를 지낸 장면 박사를 비롯해 이화여대 총장이었던 김활란 박사, 조선미술사를 개척한 고유섭 선생, 세필초상화의 대가 김은호 등이다. 군인으로서의 영웅 김영옥은 일본의 강점으로 국내활동이 어려워져 미국으로 망명한 인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순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던 해다. 그는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을 돕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장교로서 연합군 로마해방의 주인공이 되고, 수많은 부하들의 목숨을 구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민간인으로 돌아온 그에게 한국전쟁 발발소식이 전해진다. 즉시 재 입대 신청을 하고 전선으로 향한다. 그는 유색인 최초로 전장에서 미군 병력을 지휘하는 대대장이 되고, 결국 국군과 연합한 작전에서 중부전선을 60km나 북으로 끌어올리는 주역이 된다. 휴머니스트로서의 영웅 그는 휴머니스트였다. 한국전쟁 때 그는 전쟁고아들을 보살폈던 것으로 유명하다. 노년에도 한국계 이민자를 포함해 소수민족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헌신했다. 특히 위안부문제, 입양아문제 등 우리 민족과 직접 관련된 분야에서 보여준 역할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로 일본계 미국 하원의원인 마이크 혼다 의원은 자신이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하게 된 배경에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인 한국인 김영옥 대령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혼다 의원이 캘리포니아 주의원 시절인 1999년 군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주의회에 상정했다. 그러자 재미 일본계 지도자들이 거센 철회 압력을 가해 왔고 혼다 의원은 김영옥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영옥은 일본계 참전 용사들의 지지 서명을 받아 줬고 재미 일본계 지도자들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퇴역 후 작은 월세 아파트에 살면서 연금의 대부분을 사회봉사에 쓰다가 조용히 눈을 감은 김영옥 대령. 영웅을 마음껏 알리고 자랑하자 이러한 그가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온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유품을 고향인 인천에 기증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인천시는 새로 건립되는 ‘인천 이민사 박물관’에 그의 유품을 영구 전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인천시민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가슴 깊은 곳에, 대대손손 우리 후손 가슴속에 영웅 김영옥이 함께 하려면 인천이 앞장서 더 나서고 더 알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영웅 김영옥을 학생들 교과서에 싣자는 의견이 대학교수들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인천에서 출발하고 인천이 중심이 되는 ‘영웅 알리기’, ‘영웅 바로 세우기’가 우리나라 전역은 물론,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갈 때, 우리 가슴 속 영웅은 진정한 세계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우뚝 설 것이다. 인천은 지금 세계적인 공항을 갖고 있고, 송도신도시를 중심으로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2014년 아시안게임 유치에 성공함으로써 획기적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브랜드 가치의 엄청난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화 도시 인천에 세계적인 영웅 김영옥이 함께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자부심이 될 것이다. 영웅 김영옥은 어떤 물질로도 환산할 수 없는 무한가치를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영웅 김영옥을 다시 보자. 그리고 방방곡곡에 마음껏 알리고 자랑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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